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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축구이야기

K-League1 / 26R 인천 2:1 부산

by 돌돌이_ 2020. 10. 31.

 

 난 원래 축구를 좋아했다. 환경이 그랬다. 학교에서 주로 하는 경기는 축구, 피구, 발야구였는데, 축구를 제외하고는 코트 선을 주전자에 물을 부어 그려야했기에, 선생님 없이 플레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모두들 축구를 했다. 때마침 98년 월드컵도 가까워졌고, 저마다 스스로가 아무개 선수라 우기며 달렸다. 나는 그때도 골키퍼를 했는데, 포메이션이나 팀워크라는 개념이 없었던 당시 애들은 그저 Kick & Run 인지라 손 쓰지않고 상대가 치고 달리는 공을 뻥 한번 차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축구를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축구팀은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인천이다. 어릴적 잠시 인천에 사시는 이모댁에 맡겨진 적이 있었는데, 생전 처음 바다와 갈매기를 그곳에서 보았다. 뭐, 인천 사람들 성격이 다들 이천수 같애서 별로라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내 주변에는 이근호 같은 사람들 밖에 없어그런지 부딛히는 일은 없었고 줄곧 서울에 살았기에 인천에 대해서는 그저 바다의 추억만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참고로 이천수와 이근호는 모두 인천 출신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 인천에 프로축구팀이 생기면 반드시 팬이 되리라 생각하며 친구따라 잠실 야구장에 가서 롯데경기를 보러 다녔다. 두산과 경기였는데 연장전 끝에 패배했다. 김응국, 마해영, 김민재 있던 그 시절에도 롯데는 내 눈앞에서 항상 패배했다. 참고로 서울 사람이라면 두산이나 LG를 응원하는게 보통이겠지만, 내가 싫어하던 학교 선생님이 LG팬이라서 그 팀을 혐오했다. 때마침 친구도 어리석게 롯데팬이고.

 

 여튼 그러다가 2002년이 되어 전국 각지에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섰고 새로운 축구팀도 생겼다. 인천은 뒤 늦게 2004년이 되어서야 창단하였다... 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2003년에 겨울에 창단하였다. 그리고 2004년에 리그에 참가. 나도 인천유나이티드의 주주가 되고싶었지만 인천시민만 신청이 가능하고, 후에 양도의 기회가 있었는데, 양도 받는 방법을 몰라 아직까지 주주가 되지 못하고 있다.

 창단 첫경기. 상대는 감바오사카. 내가 일본 클럽중에서 감바오사카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인연에서 왔다.

 여하튼, 그 때부터 인천 경기를 챙겨보고, 친구들과 학교 끝나고 경기장도 가고, 2005년 플레이오프 결정짓는 마지막 리그 경기는 부모님과 함께 갔고, 그 이후 플레이오프 1차전인 부산전에는 친구들과 전날 밤에 만나 부산 원정까지 갔다. 운좋게 당시 구단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새벽에 경기장에서 출발하는 당일 원정 교통편을 제공했다. 나는 친구와 함께 하루 전날 밤에 가서 홍합탕에 소주를 까고 찜질방에서 밤을 지냈고, 새벽에 일어나 버스에 올랐다.

 

 근데 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내가 왜 했지?

 

 어느덧 세월이 흘러 2020년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고, 인천은 창단이래 최장무패를 기록하며 위기에 봉착했다.

 몇년 전에 창단 이후 한번도 강등된 적 없었던 함부르크가 2부로 강등되면서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한국축구리그에는 2부 강등 경험이 없는 팀이 몇몇 있는데, 그들 중, 인천을 제외하고 모두 우승의 경험을 해본 팀들이다. 우승후보 아닌 팀 중에서는 인천이 유일무이 무강등팀. 하지만 이제 함부르크처럼 우리도 내려갈 때가 되었는가 싶은 2020년이다.

 

올 하반기 조성환 감독이 인천으로 왔다. 당시 클립 영상을 보니 조 감독은 매우 여유있어 보였다. 감독의 빈자리를 메꾸고 있는 임중용 코치에게 "그런거는 이렇게 하면 되잖아. 그러면 해결 될 일인데~"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대충 그런 내용으로 대화하는 걸 보고는 아, 신임 감독님이 뭔가 계획이 있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팀은 거짓말처럼 승점을 챙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올 시즌 첫승을 따내기에 이르렀다. 허정무나 유상철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장외룡처럼 진짜 이 사람은 축구밖에 모른다 싶은 느낌도 없고. 그냥 군대가면 어디에나 있을 중사님이나 시장 20년 된 순대국집 사장님 같은 이미지의 조성환 감독. 이름조차 특별하지 않아 기억하기가 어려웠는데, 신기하게도 인천과 케미가 잘 맞는 것 같았다. 조 감독은 제주에서 왔는데, 때마침 제주에서 뛰던 아길라르와 김호남도 같이 세트로 와서 그 팀워크는 더 강해졌으리라. 사실 아길라르는 코스타리카에서 인천으로 임대로 뛰다가 제주로 이적했는데, 인천에 대한 향수병(?)이 생겼는지 좋은 플레이를 보이지 못했다. 그래서 친정팀(?)인 인천으로 또 임대를 온 상황. 이 쯤이면 대충 뛸만도 한데, 가장 눈에 띄었다.

 

14분짜리 지금 봐도 긴장되는 하이라이트

전반 이정협의 심하게 이타적인 플레이로 득점에 실패하였지만, 1:0으로 앞서며 전반전을 끝낸 부산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인천의 슈팅에도 부산 수비수들은 온몸을 던져 막아낼 정도로 지고싶지 않아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번 경기는 부산이 이겨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그들의 투지는 대단했다. 나는 2021년은 2부리그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전반 종료 직전, 스테판 무고사의 헤딩이 부산 골키퍼에게 막히며 저들은 포워드 부터 골키퍼. 벤치 선수들까지 잔류의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후반에 김대중 선수가 포워드로 투입되면서 무고사에게 쏠려있던 부산 수비들을 분산시켰다. 또한, 마하지도 투입하여 막판 득점 보다 중요한 수비를 연달아 두번 하게 만들어 주었다. 본인들의 절박함과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남몰래 훈련하며 팬들 앞에 개봉하기만을 기다리며 갈고 닦았던 실력을 가진 선수들도 대단했지만, 이런 기회를 선수들에게 준 감독의 역량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동점골을 터뜨린 김대중. 어떤 선수인가?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2015년 수비수로 데뷔전을 치를 때였다. 상대는 재미있게도 광주였다. 김대중컨벤션 센터가 들어설 정도로, 이 선수와 이름이 같은 김대중 전대통령은 광주에서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다. 나는 우스개로, 광주 선수들이니 '김대중 선상님'을 상대로 득점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국 김대중 선수는 광주를 위해 자책골을 넣으며 광주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내가 아는 김대중 선수는 수비수인데 종종 센터포워드로 출전한다. 센터포워드 김신욱이 센터백으로 출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인 모양이다.

 

 이 경기 최고의 MVP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평범한 골키퍼는 욕먹지 않기 위해 일대일 상황에 무리하게 전진하는데, 이태희는 아니다 싶으면 미련없이 후퇴하고 수비를 한다. 막판, 마하지와 함께 막은 공중볼 방어가 그 모습이다. 이는 비교하기는 부끄럽지만 21세기 갓 들어섰을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골키퍼 페테르 슈마이켈 자주하던 스텝이었다. 어느새 수비 자세가 무르익고 발기술에 자신감 까지 더한 이태희는 최고의 평점을 주어도 무관할 정도의 활약을 하였다. 선수를 보면서 기특하다는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활약 빈도로 따지면 엘리아스 아길라르가 최고였다. 이번 경기는 아길라르의 볼 키핑과 패스로 무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다른 선수들이 화려한 공연을 한 것 같다.

 동점 골 터뜨린 김대중. 이런 경기는 동점골 득점자가 MVP다. 득점이 무섭게 상대 골키퍼에게 공을 빼앗아 오는 모습에서 아직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는 역전의 의지를 상대팀에게 보여주었다.

 정동윤. 역전골의 주인공. 그로인해 부산은 가장 어렵고 어이없는 골을 먹혔다.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대단했다고 여긴 선수, 라시드 마하지. 이 친구는 호주에서도 나름 활약을 하고, 글도 잘쓰고, 기타 연주도 잘하며 학문에도 조예가 깊다. 이천수가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꼈다는 선수인데, 이날따라 학창시절 정말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반장인 친구를 보는 듯 했다. 내 15년 인천유나이티드 인생 중 최고의 수비장면이었다. 그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승리의 여신도 감동하여 힘을 실어 주었다고 감히 단언한다.

 

 10월 31일 오후 3시. 반드시 이겨야 자력잔류 가능한 서울전을 앞두고 있다. 왠지 나쁜 장면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이겨야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초반부터 무리하게 공격하다, 한골을 먹고, 모 아니면 도 같은 공격을 계속 하다가 체력 방전하여 3:0으로 분패하는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이 상상이 망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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