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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나이티드5

[FIFA21 커리어 연대기03] 2연승 끝에 감바 오사카에게 두골 먹은 날 축구시즌도 끝나서 할게 없어진 저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집에서 피파21 커리어모드를 플레이 하고 있습니다. 긴장감을 주기 위하여 한일연합리그를 만들어 그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태국인 무명감독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일통합리그. 그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 종착역은 어떤 모습일까요? 다음 날, 엘리아스 아길라르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탈리아에 있어야 할 이 친구는, 알고보니 계약이 여름 이적기간부터라고 하였다. 선수들과 구단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보도 아닌 이상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이 내가 처한 상황의 실상이다. 생각보다 책임감 없는 사람들이 많고, 잘 흘러가지 않는 일도 많다. 어쨋든, 그는 이번 시즌 정식으로 선수 등록이.. 2020. 11. 29.
[FIFA21 커리어 연대기02] 대구와의 개막전 축구시즌도 끝나서 할게 없어진 저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집에서 피파21 커리어모드를 플레이 하고 있습니다. 긴장감을 주기 위하여 한일연합리그를 만들어 그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태국인 무명감독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일통합리그. 그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 종착역은 어떤 모습일까요? 나의 이름은 암푼쑤언 피유언. 과거 동남아시아 여러 곳을 전전한 미드필더 출신의 감독이다. 애칭은 "뱅"이라, 여기저기서 뱅으로 통한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리그를 합치며 재정합리화가 시작 되면서 인천 같은 시민구단은 더욱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구단측에서 나와 이야기 하기를 "지난 번, 인천유나이티드가 전지훈련을 와 나의 팀과 친선경기를 하였는데, 그 과정과 결과가 인상적이었다."라고 하였고, 대표님은 .. 2020. 11. 25.
인천유나이티드가 좀 더 일찍 창단되었더라면 인천유나이티드가 좀 더 일찍 창단되었다면 축구와 나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내가 축구를 본격적으로 보게 된 때가 2004시즌 부터니, 인천의 탄생일과 일치하다. 그 전까지 축구는 그저 주말 이발소에서 아저씨들의 틀어놓은 프로축구 경기에 머리를 자르며 귀로 듣는 정도였다. 경기역시 한국 국가대표가 월드컵 본선에서 죽쑤는 것을 제외하고 90분 이상 본 경기가 없었다. 스포츠뉴스 하이라이트를 보며 그저 샤샤, 신의손, 신태용의 활약을 감상할 뿐이었다. 내가 10살때, 직접 축구를 하기도 했다. 몸이 둔해 달가워 하지도 않을 끼리끼리 만든 축구부에 들어가기도 했고, 동생 친구들과 축구하면서 PC게임에서나 나옴직한 호마리우의 플레이를 따라하려다 제 풀에 지쳐 나오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는 한국 국가대표.. 2020. 11. 19.
신이 도와줘도 못이긴 경기 - 2008년 07월 인천0:0제주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제주를 맞아 경기가 있었다. 나는 당시 비행전대에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실내에서 관전 할 수 밖에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제주의 날카로운 공격이 시작되었다. 원정에서 4:0으로 대패하였기 때문에 홈에서 반드시 대승하길 바랬다. 상대팀의 골이 오프사이드로 인해 무효화 되고, 석연치 않은 주심의 판정으로 상대팀 선수가 한명 퇴장 당했다. 게다가 날씨는 폭우로 쉽게 지치는 홈경기장에서 매우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내가 볼수 있는 장면은 인천의 골 장면이 아니라 폭우 속의 경이로운 제주의 패스와 -훗날 광주로 이적 후 승부조작으로 퇴출당한-골키퍼 성경모의 기막힌 방어장면 뿐이었다. 막판에는 득점이나 다름없는 상대의 슈팅이 우리의 골대를 때리고 반대편으.. 2020. 11. 17.
K-League1 / 26R 인천 2:1 부산 난 원래 축구를 좋아했다. 환경이 그랬다. 학교에서 주로 하는 경기는 축구, 피구, 발야구였는데, 축구를 제외하고는 코트 선을 주전자에 물을 부어 그려야했기에, 선생님 없이 플레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모두들 축구를 했다. 때마침 98년 월드컵도 가까워졌고, 저마다 스스로가 아무개 선수라 우기며 달렸다. 나는 그때도 골키퍼를 했는데, 포메이션이나 팀워크라는 개념이 없었던 당시 애들은 그저 Kick & Run 인지라 손 쓰지않고 상대가 치고 달리는 공을 뻥 한번 차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축구를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축구팀은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인천이다. 어릴적 잠시 인천에 사시는 이모댁에 맡겨진 적이 있었는데, 생전 처음 바다와 갈매기를 그곳에서 보았다. 뭐, 인천 .. 2020.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