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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축구이야기

인천유나이티드가 좀 더 일찍 창단되었더라면

by 돌돌이_ 2020. 11. 19.

인천유나이티드가 좀 더 일찍 창단되었다면 축구와 나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내가 축구를 본격적으로 보게 된 때가 2004시즌 부터니, 인천의 탄생일과 일치하다. 그 전까지 축구는 그저 주말 이발소에서 아저씨들의 틀어놓은 프로축구 경기에 머리를 자르며 귀로 듣는 정도였다. 경기역시 한국 국가대표가 월드컵 본선에서 죽쑤는 것을 제외하고 90분 이상 본 경기가 없었다. 스포츠뉴스 하이라이트를 보며 그저 샤샤, 신의손, 신태용의 활약을 감상할 뿐이었다.

 

 내가 10살때, 직접 축구를 하기도 했다. 몸이 둔해 달가워 하지도 않을 끼리끼리 만든 축구부에 들어가기도 했고, 동생 친구들과 축구하면서 PC게임에서나 나옴직한 호마리우의 플레이를 따라하려다 제 풀에 지쳐 나오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는 한국 국가대표 김병지 선수의 플레이에 매료되어 직접 나서서 골키퍼를 맡기도 했다.(하지만 단정치못한 꽁지머리는 싫었다.)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98 프랑스 월드컵의 1무 2패로 쓰러진 한국은 중학교 시험의 경쟁 속에 사라져버렸고, 즐거움을 오로지 PC게임에 의지하며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삶을 살았다. 나는 2003년 한국 국가대표 골키퍼 이운재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 축구를 하지 않았다.

 

만약 내 영혼의 고향팀. 인천유나이티드가 98년 이전에 창단되었다면? 핑계일지 모르나 훨씬 나은 사춘기를 보냈다고 자부한다.

축구장을 찾으며 자연스레 인천 이모/이모부와 왕래가 잦았을테고, 나는 2003년 이운재를 만날 필요도 없이 바로 축구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경기장이 잔디건, 흙덩이건. 플레이어가 성인이건 어린이건 공을 차는 남자는 언제나 주목받는다. 나는 당시보다 더 많은 친구를 사귀었을 것이고, 중학교 2학년때 있었던 더러운 추억도 없었을 것이며, 많은 여학생들을 사로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인천유나이티드의 탄생을 지켜본 창단팬(?)이고 아주 먼 훗날, 인천유나이티드가 국제적인 명성을 쌓을때 내가 초창기에 산 머플러 값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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