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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축구이야기

중립석에서 바라본 인천 - 2008.07.05 수원2:0인천

by 돌돌이_ 2020. 11. 18.

 개인적으로 2007년 암흑의 시대를 보내고 너무나도 오랜만에 경기장을 찾았다. 수원 팬 친구 두 명과 중립석에 앉았는데, 수원 서포터들까지 중립석까지 먹었나 싶을 정도로 그곳 사람들은 자신의 팀을 좋아했다.

 이전 경기인 광주와의 홈경기에서 3:0으로 대승을 거두어 승승장구하는 인천과 답답한 졸전을 거듭해왔던 수원이 빅버드에서 큰경기를 치르는데, 역시 수원은 축구도시라는 이름에 걸맞는 곳이었다. 경기 시작이 임박하자 빅버드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고, 경기장은 수원 팬들이 벌레처럼 모여 앉아있었다. 수원 마스코트가 인천을 박살내겠다고 과격한 몸동작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얄미웠다.

 뭣도 모르고 단지 수원사람이라서 수원을 응원하게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관중들의 모습을 보니 파시스트적인 무언가를 느꼈다.

 비가 간간히 뿌리는 날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직접 본 것은 상암경기장에서 피스컵의 베식타슈와 성남의 경기 이후 처음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북적이는 열광적인 수원사람들을 보며 인천에게 패배하는 K리그 최고의 팀 수원을 보기위해 미련하게도 왔다고 생각했다.

 예전 부산과 경기에서 원정을 갔었는데, 사람이 하도 없길래 왜 그런가 물었더니 교통이 불편해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수원 역시 만만치 않게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다. 빅버드가 원정지옥이란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오는 길이 힘들어서 원정지옥이다. 물론, 인천 문학경기장에 비해서.

 전반 내내 팽팽한 접전을 펼친 인천. 후반전에 돌입하자 밀고 당기는 지루한 경기는 계속 되었다. 수만명 관중 모아두고 공갖고 뭐하는가 생각한 어린이 중 한명은 인천이라도 좋으니 골 좀 터지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첫골은 인천의 아마추어적인 수비실책에 의해 터졌다. 급박해진 인천은 역전을 위해 달려들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지난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라돈치치와 김상록은 도대체 출전했는지, 아니면 어느새 교체되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인천 서포터 석에서 외침이 들렸다.

 "일!어!나!라! 인천!"

 우리는 넘어진다고 욕하지 않는다. 우리의 외침에 회답하듯 다시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수원 관중 소리에 인천 응원소리가 묻혀 들리지 않았는지 결국 종료를 앞두고 인천은 한 골을 더 내어주고 말았다.

 내가 꼽은 최악의 경기 중 하나로 남을 경기였다. 경기 내용 자체 뿐 아니라 그 주변의 요소들까지 최악이었다.

 우선 나는 습한 날씨에 옷이 흥건히 젖었고, 속옷을 준비해오지 못했다. 또, 믿었던 토토 결과 역시 참담했고, 친구들과 밤새도록 한잔 해야하는데,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 경기를 보고 깨달은 것이 한가지 있다. 나는 다시는 중립석에서 프로축구를 볼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내 자리는 영구히 인천 서포터 석으로, 상대가 누구건 절대로 함께 중립석에 앉지 않을 것이다.

 중립석에 앉아서 패배하는 인천을 응원하는 서포터들. 그것은 마치 내 앞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가에 의해 폭행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끔찍한 느낌이었다.

 결과에 크게 실망한 나는 친구들이 졸려서 찜질방으로 나가떨어진 와중에서 혼자 PC방에 앉아 온라인 축구게임으로 인천을 선택해 밤새도록 골을 넣었다. 그 게임은 피파온라인2로 기억하다. 10골을 넣으면 무언가가 주어지는데, 결국 7골 이상을 못넣고 아침해를 보고 말았다. 극도로 지친 나는 집으로 가는 직행버스에서 단 한번도 깨지 않고. 아니, 기사가 종점에서 소리질러서 깨울 때까지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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