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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연대기/중화권

[대만] 대만에서 싸게 취하는 법을 찾아봅시다~ (대만 편의점 술 소개)

by 돌돌이_ 2021. 6. 17.

 저는 예전부터 왜 남한 맥주는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는가에 대해 고민을 해왔고,
 다른 나라들은 정성스럽게 만든 술을 온 국민이 마시는데, 왜 우리는 가난과 독재정권의 산물인 희석식 소주.. 아니 '쐬주'를 마시느냐 하며 불만을 가져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4년 백수생활도 해보고 서른 넘어 첫 직장으로 중소기업에 들어가 휴무도 없이 몇년을 구르며 인생의 쓴맛을 보다보니, 쐬주의 달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여느 아재처럼 삼겹살이나 김치짜글이에 쐬주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서글픈 현실이죠.
 
대만에 장기 출장을 오게되면 고기에 쐬주한잔이 그리워질 때가 있는데요...
대만에서는 한국소주가 비싸잖아요. 그래서 대신할 만한 술을 찾아봤어요.
 저는 끽해봐야 대만에서 석달이라 그깟 소주. 뭐, 그리울 때도 있지만, 고량주로 때우면 되지 하는데...
 대만에 오랫동안 있어야 하거나 이민 간 한국사람들이라면 소주를 향한 마음이 다르겠지요?
 
 대만 사람들은 날씨탓인지 술을 그렇게 즐기진 않아요. 한국 식당은 김밥천국이 아닌 이상, 술을 팔잖아요. 대만은 안그래요. 분명 팔법하게 생겼는데도 안파는 가게가 꽤 있어요. 그래서 대만의 주당들은 '술을 파는 식당'과 '술을 팔지 않지만 외부에서 사서 갖고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꿰차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대만에서 술이 땡겨서 주당들을 찾으면 다들 금문고량주, 대만맥주를 추천해요. 하지만 한국에서 쐬주를 즐기며 살아온 평범한 한국사람에게 고량주의 높은 도수와 맥주의 포만감은 쐬주를 향한 향수병을 일으키지요.
 
 철저히 한국인 입장에서 대만에는 어떤 저렴한 술이 있는지 돌아다녀봤습니다.
 편의점에서 두루 팔리는 덜비싼 대만 술은 황주/소흥주, 죽엽청주, 미주, 금문고량주예요.
 
1. 황주(黃酒)
 맛 : 소주와 막걸리 중간 맛. 약술 느낌도 있음.
 가격 : 100 NTD
 도수 : 17도
 특징 :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술로, 삼국지 이야기를 떠올리며 운치있게 즐길 수 있음

대만에서 요리할때 주로 쓰는 황주

 황주는 고대부터 있었던 술이예요. 쌀 보관을 잘못해서 시어버리면서 술이 된 것이 시초지요. 보통 중국술 하면 빼갈(白酒)나 고량주(高粱酒)를 떠올리는데, 이것들은 아랍, 북방기마민족 등 외지에서 무역과 정복을 통해 전파된 술입니다. 고대에 마셨던 술은 죄다 황주계열이예요. 삼국지의 장익덕이 그렇게 마시던 술도 황주고, 관공이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을 베고 오겠노라 했던 그 술도 황주구요. 삼국지 드라마 보면 투명한 술 마시는 것 같은데 그거 다 뻥이예요. 중국에서 독한 증류주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일러도 당나라 때 부터로 보입니다.
 술 자체는 막걸리와 소주 중간 맛이예요. 뭔가 탁하면서도 탁하지 않은 색상이, 도수도 막걸리와 소주 중간입니다. 약재 맛도 좀 나는듯 하고 알콜향도 있고, 쌀 향도 있고 그래요. 비슷한 시리즈로는 소흥주, 여아홍이 있는데 여아홍은 편의점에서 안팔아요. 맛은 여아홍(女兒紅)>소흥주(紹興酒)>황주(黃酒) 순으로 좋은 것 같고, 가격도 저 순서로 비싸요.
 황주 계열은 보통 대만에서 요리할 때 쓰는 술인데, 제가 저걸 들고 대만친구 집에 찾아가니 뭐 그런걸 다 마시냐는 눈빛으로 보더라구요. 외국 사람이 한국와서 미림(맛술) 맛있다고 마시는 그런 모양새일까요?

 황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중국 소흥에서 만들어진 소흥주인데, 대만의 장개석 총통이 또 그쪽 지역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소흥주 담그는 사람들도 장개석 따라서 대만에 많이 왔다 그래요. 그게 오늘날 대만에서 소흥주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해요.

 
2. 미주(米酒)
 맛 : 쓰고 떫음. 미림(맛술)에서 단 맛을 완전 제거한 맛
 가격 : 24 NTD
 도수 : 22도
 특징 : 올리고당 등, 단맛을 좀 넣으면 소주와 비슷하게 마실 수 있을 것으로 보임

쌀로 만든 술입니다. 하지만 막걸리가 아니예요

 대만 사람들은 쌀로 만든 이 투명한 술을 미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한국의 막걸리를 미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뭐, 둘다 쌀로 만든 술이 맞네요.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은 발효주고, 대만은 증류주예요.
 이건 딱 미림에서 단맛을 뺀 맛입니다. 그래서 약간 쓰면서 떫은 맛이 있어요. 한국 소주와 가격, 비주얼면에서 가장 비슷한데 맛이 좀 아쉽습니다. 그런데, 뜨끈한 탕이랑 먹으면 또 괜찮습니다. 스피릿 삼아 콜라나 매실액 섞어 마셔도 될 것 같아요.
저기에 향신료와 올리고당을 좀 넣으면 진로소주와 비슷해질 것 같은데, 그건 좀 더 연구를 해봐야겠어요. 사실 한국의 소주도 저런 식용 알코올에다가 아스파라긴, 자일리톨, 정제소금, 과당 등을 넣어서 만들잖아요.
 대만에서 황주와 소흥주를 요리용으로 쓰지않고 따로 마시며 즐기는 사람은 있지만, 미주의 경우 정말 요리용으로만 쓰여요. 술자리에 가져가면 괴짜 칭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싸게 취하고 싶을 때, 저것 만큼 좋은게 없어요.
 
3. 금문고량주(金門高粱酒)
 맛 : 고량주의 정석.
 가격 :  200-300 NTD
 도수 : 38도, 58도
 특징 : 보존기한 무기한의 위엄. 대만 주당들의 최애템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잖아요? 술도 돌고 돌다보면 결국 고량주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여유 있는자의 선택. 금문 고량주! 좋아하는 사람은 남녀노소 안가리고들 잘 마셔요.

 아시죠? 한국처럼 원샷하지 않고 입술을 적셔가며 기름진 안주와 함께 먹는 거.
 원샷은 아래 사진처럼 고문당하러 가기전에나 하는 겁니다.

이 영화의 이 장면 보면서 쓸데없이 고량주가 땡기더라...

특히 얼음 잔에 마시면 한국 술 하나도 생각 안납니다. 대만에서 여러술을 마셔 봤지만 평범한 한국인 입맛에는 고량주 온더락이 답인 것 같아요. 저처럼 상온 소주 즐기는 사람이라면 미즈와리(水割り:물 섞기) 해서 마셔도 되구요. (에스프레소에 물 타면 아메리카노가 된다던데… 고량주에 물타면 코레아노?)

4. 죽엽청주(竹葉青酒)
 맛 : 맛술에서 단맛을 조금 줄이고 풀 냄새를 넣은 맛
 가격 : 165 NTD
 도수 : 35%
 특징 : 달달하면서 억지로 대나무 향을 넣은 듯한 맛.

끄윽~ 취한다... 고량주 먹은 상태에서 찍어서 흔들렸어요;;;

 한국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죽엽청주는 원래 되게 좋은 술이예요. 보통 마트에서 한국 돈 1만~2만원정도에 살 수 있는 술인데요, 제가 사진 찍은 이 술은 대만 편의점에서 파는 6천원대 짜리 술이예요. 대기업에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저렴해서 그런지 인공향이 굉장히 강했어요. 위 술들 중에서 유일하게 다 못마신 술이기도 해요.
 
 황주>금문고량주>미주>죽엽청주 순으로 먹을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결론을 말씀드리면 우선 한국의 소주 맛을 찾는데는 실패했어요.
 그나마 건진게 있다면 미주를 바탕으로 이것저것 넣으면 소주맛 나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지금 막 떠오른건데, 맥주에 미주 섞으면 소맥될것 같다는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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