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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연대기/중화권

[대만/타이난] 제국 vs 소녀 ~ 하야시 백화점과 소녀상 ~

by 돌돌이_ 2021. 6. 18.

대만 곳곳에 가면 일본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냥 일본 식민통치 시절 세워졌던 것들이 내전 없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와 있는 거겠지... 싶기도 한데, 단순히 건물뿐 아니라 거의 영혼까지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거예요.

저 같은 경우는 일본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요, 근대사에 종종 등장하는 노기 마레스케 같은 사람들도 대만과 큰 인연이 있다는 걸 보면서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 뭐, 들어본 이름은 대만에서 다 접할 수 있어요.
노기 마레스케로 말할 것 같으면 근대 군복을 입은 뼛속까지 에도막부시대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에도막부 사람이 아닌 에도막부시대의 사람이라 일컬은 이유는, 에도 막부에 대해 반기를 들고 보신전쟁에 참전을 했기 대문이지요. 이후에도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우는데, 러일전쟁 당시 203 고지 점령하면서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고 할복한다고 했었죠. 천황이 만류했지만 천황이 죽자마자 부인과 함께 자결할 정도로 군기물 좋아하는 꽉 막힌 에도시대 사람이에요. 유럽 유학조차 그 사람의 성격을 바꿔놓지는 못했어요.

그런 그가 대만에서 총독으로 있으면서 마을 계단을 개선코자 했는데, 세금이 딸리니 기부금 거둬서 놓고 하면서 그의 이름을 딴 계단이 지금도 남아있어요. 어릴 적부터 오르내리던 계단이 노기 계단이고 노기 장군이 마을 사람 위해서 기부금 받아다가 지어주었다는 이야기 듣고 자란 사람에게 일본은 완전 타국이 아니라 그냥 자기 동네 과거의 일부분이라고 여길 거예요.

그냥 친일 대만이라는 색안경 끼고 보는 외국인들은 그들의 과거 엄마 아빠 손잡고 자연스레 오르내리던 일본 계단의 아련한 그 느낌을 이해하지 못해요. 심지어 일본인들 조차도요. 특히나 서울의 경복궁(景福宮)이 조선왕조의 오테라(お寺, 일본에서 절을 말함)인지 고쇼(御所, 임금, 지도자 등, 높은 사람들이 머무는 옛 거처, 궁전)인지 헷갈려하는 현대 일본인들이라면 위에서 말한 일본 유산 위에 자리 잡아 대를 이어온 대만인들의 마음을 모를 거예요.

실제로 노기 마레스케는 대만 총독으로 있다가 끊임없는 반란으로 물러나고 뒤 이은 총독 코다마 겐타로는 문화통치를 시작하였습니다. 문화통치 아시죠? 한반도에서도 1919년 3.1 운동 계기로 힘만으로 통치가 어려우니 잘 꼬셔서 순종하는 사람들로 만드는 유화책이요. 근데, 지금 역사자료를 찾아보지 않는 일반인들은 그냥, 아 일본 장군님이 우리를 위해 계단 만들었다가 되는 거죠.

타이난에 가면 하야시 백화점(林百貨)이라는 필수코스가 있어요. 이 코스는 의외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코스입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닫혀있다가 2014년 되어서야 오픈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안에는 사기에는 망설여지지만 어머나! 요런 것까지 있어?! 싶은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많아 식후에 산책하기 좋아요.
명칭만 따지면 린(林) 백화점이라고 불러야 할 텐데, 하야시로 불리는 이유는 우선 일본에 의해 지어졌고, 영문명도 Hayashi Deparment Store로 올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옥상을 가면 전란의 흔적과 작은 신사가 있어 일본 느낌이 더욱 납니다.

그런데...
그 맞은편에 소녀상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예전엔 없었는데... 언제 생겼지?


동상 아래에는 글귀를 새겨 넣어 이 동상이 세워지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물론, 우리 인류 모두에게 매우 중대한 사건임은 부정할 수 없으나, 대만과는 직접적이지 않은 난징 대학살부터 시작하여 중화민국에 대한 언급으로 정치적 편향이 다소 아쉽습니다.
대만 국회가 정식 명칭이 "중화민국 입법원"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긴 합니다만...
모르는 요즘 사람이라면,

국민당이 또 반일 몰이 하려고 세웠구나. 국민당 못 믿겠는데, 그 추종자들이 세운 것은 당연히 못 믿겠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에게 호소함에 있어서, 쓰고 효과 있는 약보다, 이왕이면 달달한 코팅이 된 약이 나을 때가 많은 법이지요. 팩트 폭행으로 뼈 때리기가 난무 한 세상이다 보니 귀를 닫는 사람이 많거든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가짜 정보도 많지만 진실도 많아요. 진실은 마음먹으면 추려내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까지 접근하게 만드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아래는 동상 아래 새겨진 글로 띄어쓰기 하나 안 틀리고 옮겨 적어 봤습니다. 중문과 한글, 영문도 있는 것 같은데 내용이 대동소이하여 한글만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상 아래 새겨진 원문>
중일전쟁 기간인 1937년 12월 일본군은 남경을 함락시키고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강간하였다. 이에 전세계가 매우 놀라면서 일본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일본군은 계속해서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곳곳에 위안소를 만들었으며, 사기와 협박과 납치 등의 방식으로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위안부로 삼아 일본군의 간음 대상이 되게 하였다. 피해를 본 여성들은 모두 약 20~40만 명이며 대만의 피해 여성은 적어도 1,200명 정도이다.
1996년 1월 유엔 인권위원회는 위안부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위안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성노예였으며 이것은 이미 전쟁 범죄에 해당함을 확인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는 마땅히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였다. 지금까지 미국, 캐나다, 유럽 연합, 한국, 중화민국 등 22개 국가의 국회에서 유엔의 본 보고서를 결의하고 지지하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책임 인정과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의 정의를 쟁취하기 위한 용감한 행동은 이미 국제 여성 인권 운동의 모범이 되었다. 오늘 이 동상을 세움으로써 중화민국 국민들은 위안부의 비참한 역사를 잊지 않고 있으며 그들의 투쟁에 대해 존경하고 지지하고 있음을 표명한다.

복잡한 정치를 떠나,
우리는 후대의 사람으로서, 증인의 자손으로서. 또 언제가 반복될 수도 있는 비극적인 후대의 선조로서,
지금 곁에 남아있는 마음 다친 사람들을 어루만져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해야겠습니다.

제국의 흔적과 마주하고 있는 소녀像

오래된 대만의 중심이자 식민지의 중심. 그 속에서 번영을 이루어왔던 타이난.
제국의 화려한 흔적 앞에 동상이 하나 남아 시대를 초월한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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